관광산업

문화재 훼손에서 민속 축제 상업화까지: 관광이 야기한 윤리 문제

라이프-트립 2025. 4. 25. 14:29

 관광은 문화의 다리이자 경제의 수단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윤리적 고민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관광으로 인한 문화 훼손과 정체성 위기의 사례를 중심으로, 윤리적 관광의 방향성과 실천 방안을 함께 모색한다.

문화재 훼손에서 민속 축제 상업화까지: 관광이 야기한 윤리 문제

 

1. 관광과 윤리: 왜 중요한가?

 

 관광은 경제성장, 문화교류, 지역 활성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산업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수반한다. 특히 최근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관광의 순기능만을 강조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관광객의 무분별한 행동, 문화적 무지, 사진 중심 소비, 환경 파괴 등은 지역사회와 거주민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윤리적 관광(Ethical Tourism)’이라는 개념이 대두되며, 관광객과 업계 모두가 관광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윤리적 관광(Ethical Tourism)이란 여행자가 목적지의 지역사회, 문화유산, 환경을 존중하고 책임 있는 태도로 행동하는 여행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여행 소비가 아닌, 여행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영향을 인식하고, 보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결정을 내리는 실천적 접근이다.

 윤리적 관광의 핵심 원칙에는 ▲방문 지역의 전통, 가치, 습관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적 감수성 ▲지역 장인, 게스트하우스, 소규모 상점 등 로컬 경제를 직접 지원하는 소비 ▲폐기물 절감, 물과 에너지 절약, 친환경 숙박 선택 등을 통한 환경 보호 ▲여행 전 사전 조사와 의식 있는 의사결정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여를 극대화하는 정보 기반 행동 ▲인권, 동물복지, 문화적 장소에 대한 착취 회피와 같은 공정성과 책임의식이 포함된다.

 UN 세계관광기구(UNWTO)가 제정한 세계관광윤리규범(GCET)은 이러한 윤리 원칙을 포괄적으로 다루며, 여행업계·정부·관광객·지역사회 모두가 관광의 이익을 공유하면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실천 방안으로는 현지 문화 조사, 기본적인 인사말 학습, 관광객 과밀 지역 회피, 지역 상점 및 가이드 활용, 동물·인권 착취적 콘텐츠 회피, 친환경 숙박시설 이용, 소비 행동의 사회적 영향 인식 등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코스타리카나 보네어처럼 지속 가능한 관광을 국가 정책으로 실현하고 있는 지역이 있으며, Intrepid Travel, G Adventures 등 윤리적 투어 운영자는 커뮤니티 기반 여행을 통해 관광의 긍정적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윤리적 관광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관광의 미래를 위한 필수 기준이자 세계 관광 생태계가 나아가야 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2. 문화재 훼손과 관광객의 무지

 

 문화재는 지역 정체성과 역사, 공동체 기억의 집약체다. 그러나 관광객의 무지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문화재가 훼손되는 사례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2023년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는 한 관광객이 연인의 이름을 벽면에 새겨 사회적 공분을 샀고, 프랑스 몽생미셸에서는 드론 촬영 중 낙하 사고로 역사적 조형물이 파손되는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종묘나 한옥마을 등에서 관광객이 금지구역에 침입하거나 문화재에 낙서를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는 관광객의 개인 윤리 문제를 넘어, 관광상품화 과정에서 문화재의 ‘공공적 신성성’이 상실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 부족, 감시 인력의 부재, 무분별한 디지털 소비 문화도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3. 민속 축제의 상업화와 정체성 훼손

 

 민속 축제는 특정 지역의 역사적 기억, 공동체의 신앙, 세대 간 전승되는 생활 문화를 집약한 고유한 문화자산이다. 오랜 시간 동안 축제는 단지 ‘관람’의 대상이 아닌, 주민의 일상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삶의 의례였으며,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현대 관광 산업이 민속 축제를 '관광 콘텐츠'로 상품화하면서, 그 원형이 점차 상업적 구조 안에서 왜곡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관광객 유치와 경제적 수익 창출이 최우선 과제로 설정되면서, 축제의 전통적 맥락은 점차 사라지고, 외부 소비자 중심의 자극적인 구성과 연출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는 축제가 지니고 있던 ‘의례성’과 ‘공동체성’을 해체하고, 지역문화의 상징적 위계를 전복시키는 윤리적 문제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이 있다. 본래 이 축제는 조상과의 영적 교감, 죽음에 대한 존중, 가족 간의 유대를 확인하는 신성한 의례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 관광객의 수요에 맞춰 마케팅화되면서, 할로윈과 유사한 분장과 퍼레이드 중심의 볼거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진도 영등제, 강릉 단오제와 같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민속 축제들마저도 대형 콘서트, 먹거리 페스티벌, SNS용 포토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 결과 지역 주민이 행위자에서 관람객으로 전환되는 ‘축제 주체의 소외 현상’이 관찰되며, 세대 간 전승 체계 또한 약화되고 있다. 이는 ‘축제를 위한 관광’이 아닌, ‘관광을 위한 축제’가 우선되면서 지역사회 내부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문화적 피로감을 유발하는 중요한 윤리적 과제가 되고 있다.

 

4. 윤리적 관광을 위한 대안과 실천

 

 관광이 지역사회에 진정한 기여를 하려면 윤리적 기준에 기반한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문화적 감수성 교육과 사전 안내가 강화되어야 하며, 디지털 콘텐츠도 단순 ‘인증샷’ 중심이 아닌 맥락적 설명과 책임 소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민속축제의 경우 지역민의 주도성과 공동체 권한이 보장되어야 하며, 축제의 기획 과정에 지역 전통보존 전문가와 원주민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공공기관과 DMO는 ‘윤리적 관광 코드’와 같은 행동 지침을 마련하여 업계 종사자와 관광객 모두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정량적 수치에만 집중된 관광정책에서 벗어나, 문화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신뢰 형성을 새로운 핵심성과지표(KPI)로 반영해야 한다. 관광은 단순한 소비가 아닌 문화적 교류이며, 그만큼 윤리적 접근이 핵심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