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O는 지역의 관광을 넘어서 국가 이미지 형성과 공공외교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 글에서는 DMO와 공공외교가 만나는 지점에서 어떻게 지역 브랜드가 세계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이론과 사례 중심으로 분석한다.
1. 지역관광조직(DMO)의 공공외교적 기능
Destination Marketing Organization(DMO)은 본래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마케팅과 브랜딩을 주 임무로 수행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한 관광 진흥을 넘어, 지역 정체성과 문화 가치를 외부에 전달하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실천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공공외교는 전통적인 정부 외교와 달리, 지역 또는 민간이 주체가 되어 국가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형성하는 전략을 말한다. DMO는 그 지역의 자연, 문화, 사람을 가장 생동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현장 기관으로, 관광을 통한 감성적 접근을 통해 외국인과의 신뢰를 형성하고 공감대를 확대할 수 있다. 특히, 대사관이나 문화원보다 훨씬 가깝고 일상적인 접점을 제공함으로써, ‘생활형 공공외교’의 중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2. DMO를 통한 지역 브랜드의 글로벌화
공공외교는 더 이상 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도시와 지역 단위의 DMO들이 주체가 되어, 자치단체 차원에서도 국제관계와 브랜드 전략을 실행하는 시대가 열렸다. 지역 브랜드는 특정 장소가 지닌 고유한 문화, 역사, 생활 양식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관광객의 체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DMO는 이 지역 브랜드를 스토리텔링, 콘텐츠 마케팅, 체류형 관광상품, 글로벌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핀란드 헬싱키는 ‘열린 민주주의 도시’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정립하기 위해 도서관이라는 공공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2018년에 개관한 중앙도서관 오오디(Oodi)가 있다. 이 도서관은 단순한 자료 열람 공간을 넘어, 시민이 주체가 되어 도시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설계되었으며, 헬싱키의 지역 관광조직(DMO)이 도시 브랜드를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핵심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오디는 핀란드 의회 건물 맞은편, 칸살라이스토리 광장 중심에 위치하며, 이는 정치와 시민사회의 소통을 상징하는 건축적 배치로 해석된다. 도서관 내부는 ▲문화행사 및 커뮤니티 활동 공간(1층), ▲시민 창작공방인 '도시 워크숍(2층)', ▲‘책의 천국’이라 불리는 정적인 독서 공간(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2층에 마련된 크리에이티브 공간은 3D 프린터, 음악 스튜디오, 영상 편집 장비 등을 무료로 제공하며, 시민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지원하는 열린 민주주의의 물리적 구현체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오오디는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진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헬싱키시는 설계 초기부터 약 3,000명 이상의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 예산제도를 통해 일부 공간 구성을 시민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단순한 이용자의 관점에서 벗어나, 시민이 도서관의 공동 설계자이자 운영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로, 공공건축의 민주적 모델을 제시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 도서관은 연간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 방문객을 유치하며, 헬싱키를 상징하는 지역 브랜드 콘텐츠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국제 교류 행사, 문화 워크숍, 디자인 토론회 등은 관광객이 헬싱키의 민주주의 문화와 창조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오오디는 헬싱키의 도시 아이덴티티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며, DMO를 통한 공공외교의 실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 공공외교형 관광 콘텐츠의 설계 전략
DMO가 공공외교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관광 콘텐츠 제공을 넘어서, 외국인 방문객이 지역의 가치를 ‘체험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첫째, 문화적 공감 요소를 중심으로 한 체험형 콘텐츠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 전통음식 클래스,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벼베기 체험, 지역 축제의 자원봉사 참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본 가나자와시는 전통공예를 현대적 관광 콘텐츠와 연결함으로써, ‘예술과 일상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독자적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주목받는다. 2009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에 ‘공예 및 민속예술(Crafts and Folk Art)’ 분야로 지정된 이후, 가나자와시는 지역 고유의 공예 전통을 도시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본격화하였다.
가나자와는 금박(金箔), 가가유젠 염색, 구타니야키 도자기, 자수 공예 등 22종 이상의 전통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유산이 아닌 도시의 일상 속에 실질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관광 프로그램인 ‘이치고이치에(一期一会)’ 체험은 여행자가 장인의 공방을 방문해 직접 제작을 체험하고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구조로, 관광의 소비 패턴을 경험 기반으로 전환시킨다. 이는 단순 관광지를 넘어, ‘살아 있는 문화 도시’로서의 체감형 공공외교를 실현하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가나자와시는 도쿄 긴자에 ‘긴자노 가나자와’라는 상설 전시·판매 공간을 운영하며, 지역 작가와 장인의 작품을 도시 외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매년 개최되는 ‘가나자와 공예 페스타(KOGEI Festa Kanazawa)’는 지역 주민과 외국인 방문객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로, 전통공예와 현대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다층적 전략은 지역 자원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딩과 경제, 관광, 문화 외교를 통합하는 DMO형 지역 외교 모델로 확장되고 있다. 가나자와는 더 이상 '역사도시'에 머물지 않고, 예술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품은 도시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도시 브랜딩 사례로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둘째, 인플루언서나 해외 미디어와의 협업을 통한 감성적 콘텐츠 확산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SNS 기반의 디지털 외교 캠페인도 중요한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관광공사와 지방DMO는 ‘#ImagineYourKorea’ 같은 캠페인을 통해 외국 유튜버와 연계해 로컬 콘텐츠를 글로벌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DMO는 ‘콘텐츠 기반 외교’의 중심축이 되어, 지역을 세계와 연결하는 플랫폼이 된다.
4. 지속가능한 공공외교를 위한 DMO의 과제
DMO의 공공외교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조적 과제가 수반된다. 첫째, 지역 내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치 기반 구축이 필수적이다. 관광 산업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교육기관, 청년·노년층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정량성과 정성성을 함께 고려한 평가 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 단순 관광객 수나 소비 규모보다, 국가 이미지 개선, 외교적 파급력, 콘텐츠 공유 빈도 등을 지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정책과 조직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와의 연계 정책뿐 아니라 DMO 자체의 민간성과 기동성을 확보하여,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DMO는 지역을 넘어 세계를 설계하는 ‘지역형 공공외교 전략 거점’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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