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SNS 한 장의 사진이 만든 '관광 폭발', 그 끝은 어디인가
디지털 시대의 여행은 더 이상 여행사나 지도를 통해 시작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인스타그램 피드 속 사진 한 장, 유튜브 브이로그 한 컷이 새로운 관광지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유명 인플루언서가 방문한 벤치, 평범했던 시골길, 심지어 폐공장까지도 ‘핫플’이 되고, 그곳은 하루아침에 수천 명이 모여드는 이른바 ‘SNS 명소’로 변모한다.
하지만 관광객의 폭발적인 방문 뒤에 남는 것은 항상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니다. 정작 그 장소를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던 지역 주민은 이 급격한 변화에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관광은 축복일까, 침입일까?”라는 물음은 점점 더 현실적인 질문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인플루언서에 의해 형성된 관광지의 실태와 그로 인한 지역사회의 반응,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인플루언서 한 명이 만든 관광지의 탄생 메커니즘
인플루언서가 한 지역을 ‘발견’하는 순간, 그 지역은 새로운 여행지로 재탄생한다. 이들은 특정 장소를 감각적으로 촬영하고, ‘OO에 이런 곳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제작한다. 이는 기존의 전통 관광지와는 다르게, 문화적 맥락 없이 ‘감성소비’에 최적화된 장소 소비 형태를 유도한다.
이처럼 생성된 관광지는 지역의 역사, 문화, 환경을 깊이 이해하지 않은 채 유입된 방문자들에 의해 단기간 내 포화상태가 된다. 예를 들어, 한 인플루언서가 폐 역사를 배경으로 촬영한 감성 사진이 입소문을 타며, 아무런 관리 체계도 없는 장소에 하루 수백 명이 몰린 사례도 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나 지역 주민이 전혀 개입하지 못한 채, 장소는 ‘콘텐츠화’되어 버린다. 관광의 주체가 플랫폼과 소비자가 되는 현실 속에서, 지역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2. 지역 주민의 시선: 반가움인가, 불편함인가
초기에는 지역 주민들도 유명세를 반가워한다. 소규모 상점에 손님이 늘고, 마을 이름이 포털에 오르내리며 ‘전국구 명소’로 부상하면 자부심도 생긴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곧 현실의 벽을 마주하게 된다.
무단 주차, 쓰레기 투기, 사생활 침해, 소음, 드론 촬영 등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익명성에 기대어 공공질서를 해치는 관광객들로 인해 마을 전체가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소외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일부 지역 주민은 “내가 살던 동네가 더 이상 내가 살던 곳이 아니다”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더불어 일시적 붐이 꺼진 이후에는 지역 경제에 지속적인 긍정 효과도 남기지 못한다. 이처럼 급격한 ‘관광의 유행화’는 지역에 기대와 피로를 동시에 남기며, 장기적으로는 지역사회의 관광 수용성 자체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3. 일회성 유행 관광지의 구조적 문제
인플루언서가 주도한 관광지는 일반적으로 소셜 미디어상에서 일회성 유행을 타는 구조를 갖는다. 관심이 집중된 뒤 짧은 시간 내에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정체성과 방향성을 잃은 공간뿐이다.
이른바 ‘인생샷’ 장소가 유행하는 동안만 살아남는 관광지는 문화적 지속 가능성이 없다. 관리되지 않은 채 급성장한 공간은 이내 방치되며, 해당 지역은 ‘관광 후유증’이라는 부정적 레거시만을 떠안게 된다. 실제로 몇몇 폐역, 낡은 카페촌, 무인도 해변 등은 SNS 유행이 사라지자 방치되고, 시설 훼손과 낙서, 불법 투기장이 되어버린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현상은 관광이 더 이상 공공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고,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는 단지 트렌드의 흐름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치르는 불균형의 비용이다.
4. 지역이 주체가 되는 관광, 가능할까?
이제 해답은 지역이 주도하는 콘텐츠 기획과 관리 시스템에 있다. 관광은 더 이상 외부가 지역을 소비하는 구조여서는 안 되며, 지역민이 기획자이자 운영자가 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일부 지자체는 이를 반영해 로컬 인플루언서 육성, 마을 단위 관광 운영협의회 구성, 관광 수용성 평가 기준 도입 등의 실험을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전라남도의 한 어촌 마을은 외부 인플루언서 유입이 늘어나자, 마을 자체적으로 방문객 동선 설계와 포토존 위치 조정, 제한 운영 시간 안내 등을 실시하며 자율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소규모 공동체가 단기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지역관광 생태계로 전환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진정한 관광은 지역의 삶과 외부의 관심이 존중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 조율의 첫 출발점은, 관광의 방향을 결정짓는 ‘주도권’을 지역이 갖는 데 있다.
5. 디지털 시대 관광은 '책임 있는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인플루언서도, 소비자도 더 이상 관광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디지털 콘텐츠 하나가 미치는 파급력은 단지 클릭 수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 현실을 변화시키는 사회적 힘으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콘텐츠 제작자에게도 '관광 윤리'가 필요하다.
단순히 ‘뷰가 잘 나오는 장소’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지역의 특성, 주민의 사생활, 생태 환경에 대한 존중이 동반된 콘텐츠야말로 진정한 영향력이다. 이러한 인식이 널리 퍼져야, SNS 관광도 지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좋아요’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관계를 위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역도 살아남고, 콘텐츠도 오래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6.결론: 관광의 중심에 지역이 있어야 한다
관광은 더 이상 장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사람의 삶, 공동체의 존엄, 생태계의 균형이라는 복잡한 가치가 얽혀 있다. 인플루언서가 만들어낸 새로운 관광지들이 진정으로 지역에 환영받기 위해서는, 그 시작부터 지역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구조여야 한다.
지역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인플루언서도, 여행자도 이제는 묻고 선택해야 한다. “이곳을 나만의 사진이 아닌, 모두의 삶으로 남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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